책속음악이야기

음악 속으로-셰틸 비외른스타

음악을 끌어내고 싶습니다. 존재의 밑바닥에 잠재하는 그런 음악을.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악셀은 십대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근원을 음악적으로 만나기를 열망하는 친구이다. 북유럽 특유의 감성과 몽환적인 서정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인 셰릴 비에른스타(Ketil Bjǿrnsad,1952-)의 음악소설『음악 속으로』(Til Musikken)(2004)는 작가의 고향인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1960년대의 시간 속으로 이야기의 강물이 흐르는 작품이다.

그리스의 국민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1883–1957)는 1917년 고향 크레타섬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기오르고스 조르바'와의 만남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역사와 현실에 참여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투영해 조르바라는 소설 속 인물을 재창조한다.

작중 화자인 책벌레인 ‘나’-조르바는 ‘나’를 ‘두목’이라 부른다. -는 크레타로 가는 선상에서 책 는 거리가 먼 ‘그’를 만난다. 갈탄 광산을 개발하면서 ‘나’는 ‘사장’이 되고 조르바는 광산의 현장 책임자가 된다. ‘나’에게 ‘그’는 조르바가 되었고 조르바는 ‘나’를 ‘두목’이라고 부르며 두 사람은 ‘우리’의 관계로 깊어지면서 크레타의 낮과 밤처럼 대조적인 삶을 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 무엇이냐는 하나의 물음으로 나아간다.

‘나’에게 조르바는 원시적 충격이다. 마치 선혈이 낭자한 고깃덩이를 물고 게걸스럽게 먹는 수컷처럼 강렬했다. 베르그송과 니체, 그리고 붓다에 이르기까지 영혼의 탐미자로 헤매는 젊은 작가에게 뱉어내는 조르바의 입담은 기존의 관념이라는 성에 갇힌 ‘나’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삶을 계산하고 있는 ‘나’의 말은 거칠 것 없이 대담한 조르바의 행동 앞에 무력하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는 책 속 문장으로, 텅 빈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술에 취한 디오니소스인 조르바는 산투르를 들고 노래하며 춤춘다.
크레타에서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두 사람의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광산개발의 과정에서 노동자를 다루는 모습, 수도원 수사들에게 내뱉는 조르바의 언사는 신성모독에 가까울 만큼 거칠다. ‘늙은 세이렌’인 오르탕스 부인이 ‘나’에게는 연민의 여성이라면 조르바에게는 젖통을 움켜쥐고 ‘나의 부불리나’라 부르며 올라타는 암컷일 뿐이었이었다. 머리로 사는 ‘나’와 달리 조르바는 몸으로 사는 인간이었다.

‘나’는 ‘삶의 자유’를 추구하는 이였고 조르바는 ‘자유의 삶’ 그 자체였다. ‘나’에게 세상은 둘로 갈라져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세계였다. 각자의 깃발을 지키는 전쟁에서 깃발의 구호로 온갖 만행이 정당화되고 정교회의 금욕적 계율은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는 형틀이 되어 인간을 저주하고 심판했다. 조르바는 이 같은 삶의 모순을 거부했다. 미래의 천국으로 현재의 지옥을 대신하는 삶에 저항했다. 조르바는 오늘을 사는 자였고 그것은 ‘자유’라는 말로 정리된다. 조르바와의 만남으로 ‘나’는 이전에 맛보지 못한 삶의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파국을 맞는 광산개발로 모든 것을 잃게 된 ‘나’는 바로 그때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다. 그동안 조르바를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마침내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춤을 통해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나’와 조르바는 우리가 되어 함께 해변에서 산투르를 켜며 노래와 춤을 추게 된다.

영화 그리스인의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는 조르바와의 만남을 통해 ‘나’의 삶을 모색하는 과정이며 정신과 육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대립구도를 허물고 둘이 하나가 되는 더 높은 차원의 승화가 삶의 궁극이라는 카잔차키스 사상의 문학적 구도기(求道記)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물리적 변화와 포도주가 되는 화학적 변화 위에 포도주가 사랑이 되는, 몸이 죄악의 집이 아닌 거룩한 성전이 되는 ‘성화(聖化)’가 바로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자유의 본질인 것이다.

터키의 지배아래 있던 크레타에서 태어나 피비린내 나는 삶의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서유럽에서 베르그송과 니체에 심취했고 붓다와 동양 사상 심지어 공산주의 사상까지 그의 사상편력은 숨 가쁜 길이었다. 한순간도 안정을 찾지 못한 현대 그리스의 굴곡진 정치현실에 뛰어들어 시련의 시기를 살았고 영혼의 권력으로 군림한 기독교의 아성에 무신론의 도전장을 내밀어 고향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에게해로부터 멀리 중국과 일본까지 여행하며 쓴 그의 여행기들을 읽어보면 여행은 그에게 구도의 여정이었다.

1964년 미카엘 카코야니스(Mihalis Kakogiannis, 1922-2011)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는 앤서니 퀸(Anthony Quinn, 1915~2001)이 조르바 역할을 맡았고, 이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3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영화의 음악을 맡은 이는 그리스의 국민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1925-)이다. 영화 팬들에게는 <페드라 Phaedra 1962>와 <세르피코 Serpico 1973>에 삽입된 영화음악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 To traino feygei stis ochto>의 애절한 멜로디로 우리에게 익숙한 곡이 바로 테오도라키스의 작품이다.

테오도라키스는 음악적 유명세만큼 그리스 현대정치사의 페이지에도 이름이 지주 등장한다. 그리스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한 그는 10대 후반에 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군가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종전 후 열강의 이해와 국내 정파들 간의 혼란을 거듭한 그리스에서 아테네 음악원을 마쳤으나 적극적 좌파운동으로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된다. 이후 파리에서 메시앙 등에게 현대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배우고 지휘자로서 역량을 키워간다. 그리스 고전비극 <안티고네>를 오페라로 작곡하여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 전통과 민족의식에 기초한 그의 음악은 집권세력에게는 민중을 선동하는 음악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1000 여곡이 넘는 민중가곡 외에도 교향곡, 오라토리오, 오페라 등을 남긴 테오도라키스는 영화음악으로 제작된 <그리스인 조르바>를 발레음악으로 만들어 그의 대표작으로 남겼다. 1988년 베로나에서 테오도라키스의 지휘로 초연된 이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문장에서 미처 담지 못한 그리스의 정서가 한껏 묻어난다. 소설의 주요 장면이 음악으로 부활한 것이다. 마초적인 조르바의 면모가 전통 악기 부주키의 투박함으로 전해지는 ‘조르바의 춤’은 소설과 같이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작품의 대미를 장식한다. 소설의 주요 인물이기도 한 조르바의 ‘부불리나’였던 오르탕스 부인에 대한 음악적 묘사는 아름답다. 특히 ‘오르탕스의 죽음’은 이 음악의 백미인데 ‘늙은 세이렌’이 꼼짝 못한 채 죽어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지난날의 회상에 이어 쓸쓸히 죽어간 그녀를 위로하는 만가(輓歌)로 이어진다.

마리아 파란투리의 그리스노래, 테오도라키스의 발레음악 조르바, 발챠의 앨범 내_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 등장하는 여인들과 죽은 젊은 사내처럼 이름 없는 민중의 노래가 궁금하다면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음반 <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가 있다. 이 음반을 통해 그리스 민중의 노래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테오도라키스와 마노스 하지다키스 등이 만든 11곡은 선율 너머로 흐르는 애수가 있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적 동지라 불리는 그리스 여가수 마리아 파란투리(Maria Farandouri)의 그리스 노래를 모아둔 음반 또한 빠질 수 없는 앨범이다. 낮고 흐린 안개 자욱한 목소리의 그녀는 기교의 땅과는 멀리 떨어진 한 개 섬이자 파도치는 긴장감을 그대로 전하는 그리스 그 자체이다. 특히 2001년 아테네에서 있었던 실황음반은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웅장함 속에 나직한 목소리로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주키처럼 다가와 마음의 해변을 씻어 내린다. 관중들의 박수소리 마저 하나의 음악처럼 살아있는 앨범이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74세를 일기로 독일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거둔다. 아테네로 운구된 그의 시신은 정교회의 거부를 받고 고향 크레타에 안치된다. 나무 십자가 하나가 전부인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글/ 자유기고가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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