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예술의전당 자체제작 연극

백치

9. 7 - 15

세상을 그대로 투영하는, 백치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의 3등석 객실 안.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나열된 수많은 의자의 한 행에 두 남자가 앉아 서로에게 질문을 건넨다. 로고진과 미쉬킨이다. 미쉬킨에게 호감을 느낀 로고진은 특유의 호탕한 성격으로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사랑하는 여인 나스타샤에 대한 이야기까지 덧붙일 만큼 스스로를 남에게 보여주길 꺼리지 않는 로고진은 어딘지 모르게 순수한 미쉬킨을 마음에 들어한다.

 

그렇게 두 남자는 한겨울 추운 열차 안에서 나와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영향을 많이 받은 쪽은 단연 로고진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Idiot)> 가 무대에 올랐다.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매해 선보이는 자체제작 연극 시리즈의 일환으로 관객과 만나는 자리다. 2018년 그랜드 시그니처 컬렉션은 지난 2016년 <오셀로>를 선보인 박정희 연출과 또 한 번 함께했다.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거의 만나볼 수 없던 소설 <백치>를 선택했다. 미쉬킨의 순수함을 통해 이 시대에 사라져가는 선(善)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는 박정희 연출은 이번 프로덕션에서 1천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두 시간 반 규모의 무대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막이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대 위에 나열된 무수한 의자들이다. 마치 체스판을 입체화 시켜 놓은 듯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멀고도 가까운 인물 간 거리를 구현한다. 심리적 거리, 실질적 거리, 나아가 자기 자신과의 거리 등, 무대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을 지키는 의자라는 소품은 각 인물의 상태와 관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셈이다. 수많은 말을 내뱉지만 그 안에 진실과 거짓을 섞는 인물들 가운데 무대 위 의자들은 가장 솔직하고 강력한 발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상징을 지닌 의자를 배경으로, 이번 프로덕션은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로 선택했다. 긴 소설을 무대언어로 각색하며 미쉬킨과 로고진,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네 남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다듬었고, 이를 통해 원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함축적이고 동시에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극 중 미쉬킨은 모두에게 아량을 베푸는 행위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만 이내 사람들은 그를 ‘백치’ 라고 조롱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옆에 두고 그로부터 일종의 조언을 얻고 싶어 한다. 세상은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내면을 그가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은 빠르게 변화하는 페테르부르크가 배경이다. 시대와 사람, 모든 가치관이 변화하는 시대에 누군가의 심중을 알아차리는 것은 희소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백치>에 등장하는 네 인물은 자신들의 심중을 알아차리는 미쉬킨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보고 있다. 때문에 그에게 집착하고, 자신을 투영하고, 또 그를 부정한다. 미쉬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치’는 미쉬킨 공작을 지칭한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하는 구원자이며, 사람들도 그를 통해 생을 구원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토록 순수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은 사람들에게 미쉬킨은 그저 ‘백치’일 뿐이다.

 

이번 프로덕션의 미쉬킨 공작은 인물에 대한 배우의 고민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그 덕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원작에서도 주인공 미쉬킨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일종의 구원자로서 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쉬킨이 무대 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 관객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필모 배우의 미쉬킨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도 존재했기에 원작의 인물을 땅에 보다 정착시켰다.

미쉬킨의 모습이 더욱 부각될 수 있던 것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미쉬킨 옆에서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동시에 질투와 분노,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일종의 동질감까지 갖는 로고진이 특히 그렇다. 특유의 호탕한 성격으로 나스타샤를 향해 구애하는 로고진은 미쉬킨과 정 반대에 서 있는 듯 하나 사실 미쉬킨과 아주 닮은 인물이기도 하다. 미쉬킨이 타인을 구원하는 사람이라면, 로고진은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인물이다. 나스타샤에 대한 집착어린 애정 역시 자신을 구원하려는 욕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김수현 배우는 그러한 로고진의 심리를 거친 언어와 행동 속에 세밀하게 숨겨놓았고, 덕분에 로고진이 말하지 않는 순간 오히려 미쉬킨을 연상케 했다.

 

나스타샤는 이번 작품에서 미쉬킨 못지않게 매우 어려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방대한 소설을 짧은 무대언어로 압축하면서 나스타샤 행동의 동기에 어쩔 수 없는 생략이 있었기에 이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것은 순전히 배우의 몫이었다. 황선화 배우는 팜므파탈이라는 전형성 아래 갇히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스타샤를 보여줬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채기도 전에 타인들로부터, 그것도 남성들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기준대로 가치를 평가받으며 살아온 그녀는 일생동안 그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더 깊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 위에 더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인물이 더욱 크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황선화 배우는 인물에 대한 많은 고민으로 관객이 나스타샤와 보다 긴밀히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자유를 원하는 아글라야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서 다소 철없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손성윤 배우는 순수한,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가장 솔직히 바라보고 있는 아글라야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선(善)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어떤 가치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네 남녀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가치를 반추하게 한다.

 

대전공연을 아쉽게 놓쳤다면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다시 오르니 찾아보시길 바란다.

 

글. 황정은

프리랜서 인터뷰어 그리고 극작가

© Daejeon Arts Center, Korea. Rights Reserved.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의 3등석 객실 안.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나열된 수많은 의자의 한 행에 두 남자가 앉아 서로에게 질문을 건넨다. 로고진과 미쉬킨이다. 미쉬킨에게 호감을 느낀 로고진은 특유의 호탕한 성격으로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사랑하는 여인 나스타샤에 대한 이야기까지 덧붙일 만큼 스스로를 남에게 보여주길 꺼리지 않는 로고진은 어딘지 모르게 순수한 미쉬킨을 마음에 들어한다.

 

그렇게 두 남자는 한겨울 추운 열차 안에서 나와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영향을 많이 받은 쪽은 단연 로고진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Idiot)> 가 무대에 올랐다.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매해 선보이는 자체제작 연극 시리즈의 일환으로 관객과 만나는 자리다. 2018년 그랜드 시그니처 컬렉션은 지난 2016년 <오셀로>를 선보인 박정희 연출과 또 한 번 함께했다.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거의 만나볼 수 없던 소설 <백치>를 선택했다. 미쉬킨의 순수함을 통해 이 시대에 사라져가는 선(善)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는 박정희 연출은 이번 프로덕션에서 1천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두 시간 반 규모의 무대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막이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대 위에 나열된 무수한 의자들이다. 마치 체스판을 입체화 시켜 놓은 듯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멀고도 가까운 인물 간 거리를 구현한다. 심리적 거리, 실질적 거리, 나아가 자기 자신과의 거리 등, 무대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을 지키는 의자라는 소품은 각 인물의 상태와 관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셈이다. 수많은 말을 내뱉지만 그 안에 진실과 거짓을 섞는 인물들 가운데 무대 위 의자들은 가장 솔직하고 강력한 발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상징을 지닌 의자를 배경으로, 이번 프로덕션은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로 선택했다. 긴 소설을 무대언어로 각색하며 미쉬킨과 로고진,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네 남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다듬었고, 이를 통해 원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함축적이고 동시에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극 중 미쉬킨은 모두에게 아량을 베푸는 행위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만 이내 사람들은 그를 ‘백치’ 라고 조롱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옆에 두고 그로부터 일종의 조언을 얻고 싶어 한다. 세상은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내면을 그가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은 빠르게 변화하는 페테르부르크가 배경이다. 시대와 사람, 모든 가치관이 변화하는 시대에 누군가의 심중을 알아차리는 것은 희소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백치>에 등장하는 네 인물은 자신들의 심중을 알아차리는 미쉬킨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보고 있다. 때문에 그에게 집착하고, 자신을 투영하고, 또 그를 부정한다. 미쉬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치’는 미쉬킨 공작을 지칭한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을 구원하길 원하는 구원자이며, 사람들도 그를 통해 생을 구원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토록 순수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은 사람들에게 미쉬킨은 그저 ‘백치’일 뿐이다.

 

이번 프로덕션의 미쉬킨 공작은 인물에 대한 배우의 고민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그 덕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원작에서도 주인공 미쉬킨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일종의 구원자로서 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쉬킨이 무대 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 관객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필모 배우의 미쉬킨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도 존재했기에 원작의 인물을 땅에 보다 정착시켰다.

미쉬킨의 모습이 더욱 부각될 수 있던 것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미쉬킨 옆에서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동시에 질투와 분노,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일종의 동질감까지 갖는 로고진이 특히 그렇다. 특유의 호탕한 성격으로 나스타샤를 향해 구애하는 로고진은 미쉬킨과 정 반대에 서 있는 듯 하나 사실 미쉬킨과 아주 닮은 인물이기도 하다. 미쉬킨이 타인을 구원하는 사람이라면, 로고진은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인물이다. 나스타샤에 대한 집착어린 애정 역시 자신을 구원하려는 욕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김수현 배우는 그러한 로고진의 심리를 거친 언어와 행동 속에 세밀하게 숨겨놓았고, 덕분에 로고진이 말하지 않는 순간 오히려 미쉬킨을 연상케 했다.

 

나스타샤는 이번 작품에서 미쉬킨 못지않게 매우 어려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방대한 소설을 짧은 무대언어로 압축하면서 나스타샤 행동의 동기에 어쩔 수 없는 생략이 있었기에 이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것은 순전히 배우의 몫이었다. 황선화 배우는 팜므파탈이라는 전형성 아래 갇히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스타샤를 보여줬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채기도 전에 타인들로부터, 그것도 남성들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기준대로 가치를 평가받으며 살아온 그녀는 일생동안 그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더 깊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 위에 더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인물이 더욱 크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황선화 배우는 인물에 대한 많은 고민으로 관객이 나스타샤와 보다 긴밀히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자유를 원하는 아글라야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서 다소 철없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손성윤 배우는 순수한,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가장 솔직히 바라보고 있는 아글라야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선(善)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어떤 가치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네 남녀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가치를 반추하게 한다.

 

대전공연을 아쉽게 놓쳤다면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다시 오르니 찾아보시길 바란다.

 

글. 황정은

프리랜서 인터뷰어 그리고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