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연히 팟캐스트를 통해 음악 평론가 강헌 씨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걸쭉한 입담으로 중간중간 육두문자까지 날리며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시각의 음악사관을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강의였지만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집중도 높은 강의였죠. 그 강의가 책으로 엮어져 나왔습니다. 바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 입니다. 제목 밑에는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이란 부제를 달아놨습니다.

저자 강 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마이너리티의 예술 선언
(재즈 그리고 로큰롤의 혁명)

2. 청년문화의 바람이 불어오다
(통기타 혁명과 그룹사운드)

3. 클래식 속의 안티 클래식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

4. 두 개의 음모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속에 숨은 비밀)

이렇게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들으며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음악사’라고 할 때 흔히 접하는 바로크, 고전, 낭만, 인상, 근대.... 등의 뻔하고도 식상한 통사(通史) 스타일의 전개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저자는 역사의 한순간을 집어낸 다음 그 시점에서 음악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었는지 또 음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집중합니다. 그의 이러한 독특한 사관(史觀)은 책의 서문이 시작되기도 전 두 페이지에 걸쳐 큼직막한 글씨로 콱 박아놓은 단한마디 강렬한 문장에서 이미 드러납니 다.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라는 선언조의 강렬한 문장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음악사를 다루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저자의 역사 서술 방식은

특정 상황의 촉발자(觸發者,) 시발자(始發者,) 주도자(主導者)가 누군가를 밝히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상황이라 함은 주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의해 전복되는 순간, 주도권이 기득권으로부터 일반에게 넘어가는 순간을 의미하는데요. 이처럼 단단했던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 환경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 역사의 주요장면으로 서술합니다.

그가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재즈와 로큰롤이었습니다.

흑인노예들의 한이 서린 블루스가 어떻게 탄생하여 재즈로 발전했고 또한 주류사회에 파고들어 자리 잡게 됐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재즈가 예술적 자의식의 발동과 함께 어떻게 대중에게서 멀어져갔고 그 자리를 어떻게 로큰롤이 차지하게 되는지도 살펴봅니 다. 자본주의 사회가 들어서며 나타난 특이점은 소비자가 누구며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문화의 주체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말초적이며 단순한 음악, 본능적이 며 자극적인 음악이 나타나면서 그리고 손쉽게 음악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기기가 발명되고, 라디오와 TV 등 매체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클래식음악이 주류였던 사회가 뒤집어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청소년들에 의한 전복입니다. 경제적 능력도 사회적, 정치적 결정권도 없는 10대들, 더구나 사춘기의 반항적 자아가 한창 싹트기 시작하는 이들에게 로큰롤이 미친 영향과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학부모들이 록스타(특히 흑인)들을 어떻게 헤코 지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서스펜스 소설처럼 스릴 넘치기도 합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청년문화인 ‘통기타 혁명과 그룹사운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청년들이 기성세대와 선을 긋고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무섭게 구축해나간 것이 바로 1960년대 말 대학가입니다. 군사정권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자유를 상징하는 통기타 문화, 그룹사운드 문화와 만나며 폭발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당시의 이 청년문화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처절한 핍박을 당하게 되죠. 당시 있었던 금지곡들이 어떤 사유로 금지 되었는지에 대한설명은 그 사연이 우습고도 기가 막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바흐로 대변되는바로크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요. 당시 음악가들의 신분이 궁정 요리사보다도 못했다는 얘기는 조금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결국 경제력과 밀 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 모차르트는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으며 베토벤은 또한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풀어 설명해줍니다. 모차르트의 ‘투정’과 베토벤의 ‘투쟁’이라는 소제목이 이들의 처세 방식을 우 회적으로 알려주지요.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려줍니다.

‘사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동반자살 뒤에 당시 일본 오디오산업의 계략이 있었다는 음모론이 흥미롭고요. 일본의 엔카문화가 우리나라에 상륙하며 트로트로 발전해간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명성황후를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초연당시 어떻게 만들었나 보러 갔다가 하도 열받아서 중간에 튀어나왔습니다. 맘 같아서는 폭탄을 무대에 확 던져 모조리 날려버리고 싶었습니다” - 강헌 -

팟캐스트 강의를 듣다보면 위의 내용이 나옵니다. 강의를 듣다보면 저 말이 이해가 갑니다. 모차르트가 얼마나 뻔뻔하면서도 찌질했는지, 베토벤은 또 얼마나 성질 더럽고 괴팍했는지도 알게 됩니다.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인 노래가 된 ‘아침이 슬’의 탄생과 그 웃지 못 할 뒷이야기 등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흥미롭습니다. 본문보다도 더 많을 것 같은 주석은 자잘한 정보를 깨알같이 전해줍니다. 그는 베일 속에 감춰진 예술가의 신비를 벗기고 민낯을 들여다볼 때 음악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고 얘기합니다. 단순히 객석에서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많은 약점을 가진 인간이며 그런 약점 많은 인간이 몸부림치며 피와땀으로 만들어낸 노동의 산물일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음 악이 더 진실 되게 들리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궁정의 정규직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며 때로는 돈을 벌기 위해 비굴하게, 때로는 온전히 자신의 영혼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그들...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었 다는 것을 알게되자 그들의 음악이 더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 새롭고 신선한 음악관련 서적이 될겁니다^^